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브리즈번 일상

해외에서 향수병을 맞이하는 자세

by sensible babe 2020. 10. 17.

해외에서 향수병을 맞이하는 자세

 

전 세계가 의도하지 않게 코로나 19를 만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요,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. 회사일에 적응해갈 즈음 강제휴직(물론 잘리지 않은 게 어디냐며 위로하지만)을 하면서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거든요. 티스토리 시작은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이고요. 해외에서, 호주에 처음 살아보는 이민자의 시선으로 호주를 관찰하고, 특히 브리즈번에서의 삶을 여러 주제로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었습니다. ㅎㅎ

 

그러다가 한국 생각이 많이 나네요.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타향살이 3년 차, 향수병인 것 같습니다. 처음 향수병을 맞이하는(?) 자세에 대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. 

 

향수병 부정기 

한국에 있는 가족, 지인들은 종종 말합니다. "한국보다 호주가 좋지~" "이민 잘 간 거야." 맞아요. 갈까 말까 하면 가라는 말도 있잖아요. 그리고 누군가 제 등을 떠밀어서도 아니고, 제가 선택한 것이기에 결코 호주 살이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. 그렇기에 한국 생각, 좀 더 정확히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, 친척, 친구들이 생각날 때면,,

 

"한국이야 나중에 가면 되지."  "한국에서 그만큼 살았으면 된 거지." "한국은 그립지 않고, 내 사람이 그리워." "사람 많은 아침 및 퇴근길 지하철에서 벗어나고 싶었잖아." 하면서 그리운 감정을 카테고리로 나눠서 생각하고, 한국이 생각날 때면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었습니다. 언제나 제 버킷리스트 우선순위에는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었거든요. 그런데 그 버킷리스트를 이뤘으니까요. 



 

자막없이 편하게 본 기생충! 국뽕 뿜뿜이었지요 ㅎㅎ

 

향수병 인지 및 원인 파악

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여러 생각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.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한국이 그립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던걸요. 가장 큰 원인은 호주가 코로나 19 통제를 위해 국경 봉쇄를 하면서 한국에 갈 수 있는 데 가지 않는 것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의 격차가 너무 큰 데서 오는 괴리감이었습니다. 시작은 있으나 끝을 알 수 없는 규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,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. 

 

작년에 열린 한국문화축제. 아리랑을 듣는데 눈물 핑 한건 안비밀~

 

한국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가 올해 초인데 벌써 2020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, 그 시간 동안 뭘 했는지 되돌아보는데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다는 것도 과거를 그리워하는데 한 몫한 것 같습니다. 

 

출발하는 비행기 안. 이 때가 젤 기분 좋다는 ㅎㅎ



향수병 받아들이기 

한국을 어떤 면에서는 여러모로 그리워하고 있구나.. 를 느낀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은 "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"는 명언이 있잖아요? ㅎㅎ 주변 사람들에게 제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. 마음에 더 이상 묻어두지만은 않기 위해서지요. 그러자 그냥 말없이 들어주는 사람,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위로를 해주는 사람, 코로나 19로 인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예로 들며 충고에 가까운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 등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들의 말을 통해 좀 더 제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. 

 

시장 구경이 참 그리워요.
길거리에서 사먹는 호떡도 생각나고요.

 

 

향수병 다스리기

 

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주 풍경..!

물론,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. 그래서 위기는 기회다! 라는 말을 되뇌기도 하고요. 이 순간을 한편으로는 언젠가 그리워하겠지요. 그럼에도 한국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.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루프..ㅎㅎ

 

향수병이 더 깊어지지 않기 위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,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둘씩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입니다. (현재 진행형!)

 

  • 좀 더 다양한 한국음식 만들기 Thanks to 백종원!
  • 새로운 취미 습득 중 혹은 예정: 베이킹, 유화 그리기, 영어 이외 다른 언어 일상 회화 수준 정도만 배워보기
  • 호주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시간 자주 보내기 
  • 한국에 있는,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뜬금포 고백하기
  • K-pop의 자랑, BTS 덕질!

 

맘 맞는 사람들과 한 잔하던 때도 그립고요

 

작년 이맘 때쯤 밤 늦은 시각의 가로수길도 생각납니다. 

 

 

향수병, What's next?

직장생활의 위기가 3,6,9년 차 단위로 온다고 했던가요? 향수병도 얼핏 비슷한 것 같습니다. 현지 생활이 익숙해질 만할 때 즈음 잠시 잊고 지냈던 과거의 즐거운 순간들이 생각나고, 분명 내가 선택한 결정이지만, 그리운 건 그리운 것이니까요. 

 

그래도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의 집콕 생활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, 

 

  • 하루 종일 대부분 집에만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다. (=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어요.)
  • 순간순간 감정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, 받아들이되 이 또한 다스리는 노하우 습득
  • 그때그때 관심사가 생기면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습관
  •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 좀 더 집중하는 것

 

서울시청앞 광장은 지금도 여전하겠지요?

 

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. 

 

다음에 또 향수병이 찾아온다면? 지금과 비슷한 집콕 상황이 일어난다면?

음... 그러지 않기를 일단 바라지만, 오늘 썼던 글을 정독하면서 먼 미래에는 좀 더 현명하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기를..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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